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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책

《이제야 언니에게》 - 최진영 [창비]

by Sibnt 2020. 1. 4.

《이제야 언니에게》 - 최진영 [창비]

아픈 소설을 읽었다. 화가 나는 이야기였고, 속상한 이야기였다. 이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공감하려 한다고 해도, 제야의 두려움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신뢰가 무너져 내렸던 마음도, 이상하게 왜곡된 시선도, 평생을 따라다니는 그 날의 기억도, 나는 감히 공감할 수 없다. 미안했다. 이모가 제야의 손을 잡고 “어른으로서 정말 미안해”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저 미안했고, 미안했고, 미안했다.

 


* 책 속 밑줄

아저씨가 비싼 선물을 줬으니까 나는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좀 불편하다. 앞으로 아저씨를 보면 핸드폰이 생각날 거고 아저씨 말을 잘 들어야 할 것 같고, 억지로 빚을 진 것만 같다. 오늘 동우의 팔찌도 그렇고 아저씨의 핸드폰도 그렇고…… 선물이 불편할 수도 있다니. -p.34

내게 모든 걸 떠밀고 나를 없애버리고 있다. 지금의 나를 쓰레기로 만들어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다 나를 위해서라고, 내 미래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찢어버리고 싶은 건 내가 아니다. 그런데 내가 찢어지고 있다. -p.49

당신들이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그 모든 것들, 설명을 요구하는 그 모든 의심들, 설명해봤자 핑계나 변명으로 듣는 걸 알아. 어째서 내가 변명을 하나. 변명은 가해자가 하는 것 아닌가. 당신들에게 나는 가해자인가. -p.51

매일 아저씨랑 시간 맞추는 것도 번거로울 것 같다고, 정말 괜찮다고 또 거절해야 했다. 어른한테 싫다고 말하는 건 왠지 무례한 것 같아서 괜찮다고 말하는 건데 생각해보면 아저씨 아닌 다른 사람들도 자주 그런다. 거절인지 모르고 같은 말을 계속하고, 괜찮다고 대답하다보면 나는 점점 안 괜찮아지고. -p.69

사람들은 내가 겪은 일이 먼지인 줄 안다. 먼지처럼 털어내라고 말한다. 먼지가 아니다. 압사시키는 태산이다. 꼼짝할 수 없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움직일 수 있다. 걷고 보고 말하고 달릴 수 있다. 울고 웃고 판단할 수 있다. 나는 쓸 수 있다. 나는 하고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p.86

이모가 제야의 손을 잡고 가만히 말했다. 어른으로서 미안해, 제야야. 정말 미안해. -p.155

너무 노력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노력해야 해. 이모가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은 노력해야 해. 소중한 존재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래야 해.
노력은 힘든 거잖아요. 제야가 중얼거렸다.
마음을 쓰는 거야. 억지로 하는 게 아니야. 좋은 것을 위해 애를 쓰는 거지. -p.161

그날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날 그 일이 없었어도 그는 분명 지금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p.207

나를 걱정했던 그와 나를 강간한 그는 한 사람이다. 친절하고 비열할 수 있다. 다정하고 잔인할 수 있다. 진실하고 천박할 수 있다. 그게 사람이다.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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