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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책

《일간 이슬아 수필집》 - 이슬아

by Sibnt 2019. 10. 3.

《일간 이슬아 수필집》 - 이슬아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써서 구독자에게 메일로 전달하고 한 달 원고료 만 원을 받는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 이러한 형태의 연재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개인이 구독자를 모집해서 글을 연재하는 형태. 내가 <일간 이슬아>를 알게 된 시기는 이미 6개월간 연재에 성공하고 그 글이 책으로 나온 이후였으니… 이미 이슬아 작가는 유명해졌고,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일간 이슬아>처럼 개인 구독자를 모집하는 다른 작가들도 종종 보였다. 개인이 글로 독자와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형태의 길을 만든 것 같았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2018년도 말에 사서 읽다가 최근에 마지막 부분까지 다 읽었다. 대부분 내용은 초반에 읽어서 1년의 4분의 3이 지난 지금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정말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한 편 한 편이 짧은 시트콤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생생했다. 깔깔 웃기도 했고, 뭉클하기도 했고, 때론 화가 나기도 했다. 픽션과 논픽션의 사이 응픽션. 너무나 생생해서 사실로 받아들여졌지만,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한 번씩 다시 생각했다. 작가를 존중하기 위해, 작가와 글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기 위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사실이든, 픽션이든.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다고 느껴지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에 대한 질문이 계속 들었다. 아마도 그런 글을 쓰고 싶어서인 것 같다. 솔직한 글. 혹 그게 픽션이라도 솔직하다 느껴지는 글.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무엇을 감추어야 할까 고민한다. 내 솔직한 표현이 누군가에게 거슬리지 않을까, 혹시 상처받지 않을까, 아니면 내 표현을 보고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등.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자꾸 감추다 보면 내가 쓸 수 있는 표현에는 제한이 생긴다. 결국 쓰지 않게 된다. 지금이 딱 그 상태이다. 답답해서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지만,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결국 쓰지 못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을 쓴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는 이렇게 일기라도 쓰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언젠가는 남들에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 사적이고 폐쇄적인 영역에서 조금은 더 공적인 영역으로 나아가 글을 쓰고 싶다. 마감을 해야 하는 환경에 스스로 들어가 보거나 익명의 계정을 만들어 자유롭게 글을 써보는 것 등 방법을 생각해보고 있다. 어쨌든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

 


* 책 속 밑줄

밤에 애인이 오겠다는 약속이 딱히 없는 날에도 작고 노란 조명과 디퓨저 가습기를 켜놓고 외출한다. 애인이 안 올 수도 있지만 어쩌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뭔가를 사랑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작은 가능성에도 성실해진다. -p.38, 외박 (上)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는 참 좋을 텐데
(…)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얼마나!
너는 좋을 텐데
-p.94, 호언장담, 진은영의 시

영호관에서 나와 이대에서 망원동까지 한 시간을 걸으며 나는 사랑하는 애를 생각했다. 너를 좋아하기까지 나에게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필요했는지. 너를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가 더 필요할지. 널 알아보려고 내가 그동안 이런 것들을 보고 듣고 읽어온 것만 같다고 섣불리 믿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참고자료가 모자란지 모른다고 한숨을 쉬었다. -p.116, 생소한 아름다움

하지만 산다는 건 아주 외로운 일이란다. 오늘처럼 네가 와주는 날은 이렇게 좋지만, 네가 다시 떠나고 나 혼자 집에 남으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외로워. -p.122, 도란도란

-p.163~166, 좋아해줘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사이드는 인간이 게으르면 안 된다고 생각한대. 게으른 것을 너무 커다란 죄악으로 느끼나봐. 하지만 나는 게을러도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어. 모든 사람들이 미친 듯이 노력하는 세상은 나쁜 세상인 것 같다고. -p.413, 연인들과 이방인들

그럴 때마다 나는 수화기를 들고 116을 눌렀다. 익숙한 신호음이 들려왔다. '뚜. 뚜. 뚜. 뚜. 뚜…' 정확히 1초 간격으로 신호가 울리는 와중에 여자 아나운서가 이렇게 말했다. '다음 시각은 오전 일곱 시 십칠 분 이십 초 입니다. 뚜. 뚜. 뚜. 뚜. 땡 -' -p.486, 우리들과 증언들

그러고선 카페로 가 각자의 글을 썼다. 쓰거나 고쳐서 완성해야 할 글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조금 달랐다. 글을 쓰는 건 고된 일이지만 자신의 쓸모를 찾는 데에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 쓰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각자 고유한 사람들임을 잠깐 기억해냈다. -p.493, 양의 부활

그녀의 모습을 몇 번이나 다시 보면서 나는 글쓰기가 나를 해치는 일보다는 살리는 일에 더 가깝다는 걸 기억해낸다. 그러고는 뭐라도 쓰기 시작한다. 빈약한 이야기라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낫다고 믿으면서 쓰기 시작한다. 계속 쓰면서 나아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p.535, 이야기가 빈약한 날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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