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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책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마음산책]

by Sibnt 2019.09.30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마음산책]

"시도하다(provare a) = 노력하다(cercare di)"
이 조합, 이 어휘 방정식은 내가 이탈리아어에 대해 시도한 사랑의 은유라고 볼 수 있다.

언어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줌파 라히리 작가는 분명 이탈리아어에 푹 빠졌다. 이탈리아어를 좋아한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이탈리아어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작가는 익숙한 장소와 익숙한 언어를 떠나 살아가는 수고로움을 즐겁게 여긴다. 이탈리아어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남편보다 이탈리아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었지만, 외모 때문에 남편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 그 한계를 보며 속상해했다.

열정. 내가 열정적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나는 무엇에 열정을 가지고 있을까. 어릴 때 열정을 이야기하면 '마땅히 갖추어야 하고 따라가야 할 무엇'으로 인지했지만, 언제부턴가 열정은 '지치는 것, 과하게 요구되면 안 되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다. 자발적인 열정이 아닌 요구되는 열정을 살아온 탓인지 모르겠다.

열정이 없는 삶은 왠지 무기력하다. 줌파 라히리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힘, 밝은 에너지를 느꼈다. 나도 자연스럽게 이런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요구되는 열정이 아닌 내 안으로부터 타오르는 그런 열정으로.

 


* 책 속 밑줄

"시도하다(provare a) = 노력하다(cercare di)"
이 조합, 이 어휘 방정식은 내가 이탈리아어에 대해 시도한 사랑의 은유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끈질긴 시도, 끊임없는 시험 이외에 다름 아니다. -p.17, 사전

이제 이 작은 사전은 부모라기보다 형제 같다. 여전히 내게 필요하고 아직도 날 이끌어준다. 사전에는 비밀들이 가득하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p.18, 사전

난 서툴고 어색한 엉터리 이탈리라어로 일기를 썼다. 단어를 찾아보지 않고 사전 없이 충동만으로. 마치 어린아이처럼, 글을 잘 모르는 사람처럼 더듬더듬 써나갔다. 난 그렇게 쓰는 게 부끄러웠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생겨난 이 미스터리한 충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p.52, 일기

일기는 내게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는 훈련, 습관을 만들어줬다. 하지만 일기만 쓰는 건 집 안에 틀어박혀 혼자 말하는 거나 다름 없다. 일기에 나 자신을 표현하는 건 내면의 개인적인 서술일 뿐이다. 어느 순간 위험하더라도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p.55, 단편

불가능을 인식한다는 게 창조적 충동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달할 수 없을 듯한 모든 것 앞에서 나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사물에 대해 경이로움과 놀라움을 느끼지 않고는 그 무엇도 창작할 수 없다.
나와 이탈리아어 사이의 거리를 채울 수 있다면 난 더는 이 언어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p.81, 불가능

내 불완전을 잊기 위해, 삶의 배경으로 숨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써왔다. 어떤 의미에서 글쓰기는 불완전에 바치는 경의다. 사람처럼 책은 창작 기간에는 불완전하고 완성되지 않은 어떤 것이다. 임신 기간이 끝나면 사람은 태어나고 성장한다. 하지만 책은 쓰여지는 동안에만 살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내게 책은 다 씌어지고 나면 죽는다. -p.94, 불완료과거

외국어는 섬세하고 예민한 근육과 같다. 근육을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진다. 미국에서 내 이탈리아어는 억양이 틀리고 어설프게 들렸다. 어법, 소리, 리듬, 억양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겉도는 것 같았다. 단어에는 강세가 없고 의미조차 없이 피상적으로 떠도는 것 같았다. -p.104, 두 번째 추방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인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문법과 구문이 당신을 바꾸고, 다른 논리와 감정으로 이끌어줄 겁니다." -p.128, 변신, 도메니코 스타르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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