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개/책

《경찰관속으로》 - 원도 [이후진]

by Sibnt 2019.09.22

《경찰관속으로》 - 원도 [이후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제목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읽기 전에는 그저 경찰관에 대한 이야기이겠거니 생각했던 제목이었는데, 책을 펼쳐보니 '경찰, 관 속으로'라고 적혀있었다. 경찰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와 경찰관으로서 겪었던 고통과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담은 제목이구나, 생각했다.

경찰서나 파출소에 가본 경험도 없고 관련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에게 경찰은 치안을 위해 애쓰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저자가 언니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꺼내놓은 이야기들은 상징적인 존재를 조금더 현실적인 존재로 가까이 끌어왔다. 나와 같이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어쩌면 상처와 아픔에 더 가깝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 책 속 밑줄

동거하던 커플이 있었어.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태도가 바뀌는 여자친구를 보고 외도를 의심하게 된 남자친구는, 여자친구가 기르던 강아지 두 마리의 목을 칼로 찔러 죽여버렸지. 그리곤 그 사체의 가죽을 벗겨 싱크대 호스 위에 고무장갑 걸어놓듯 걸어놨던 거야. …. 언니, 나는 정말 묻고 싶어. 이 상황에서 누가 짐승이고 누가 인간이야? 누가 인간이길 포기한 거지? 법에도 경중이 있듯이 목숨에도 무겁고 가벼운 것이 있어서, 인간보다 덩치가 작은 것의 죽음은 도통 무감각해지기로 작정한 거야? 개새끼라는 욕은 없어져야 해. 개새끼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그런 욕은 더이상 무의미하니까. -p. 21-22, 찢긴 무지개다리

사극을 보면 말이야. 화살을 쏘는 장면이 자주 나오잖아? 사람을 향해 쏜 화살이 아니라면 대부분 카메라는 날아간 화살이 아닌 주인공의 얼굴을 비춰주지. 하지만 난 늘 궁금했었어. 어딘가로 날아간 화살은 어디에 박혔을까? 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까?
이 과정에서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냈어. 화살을 쏜 사람은 그 화살이 어디로 갔는지, 날아가다 떨어졌는지, 어딘가에 박혀 썩어가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걸. 오로지 그 화살에 맞은 쪽만 맞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홀로 죽어간다는 걸. -p.38, 여전히 잘 사는 사람들

사실 경찰관인 내 입장에선 특별할 것 없는 싸움의 현장이었는데 내가 왜 충격을 받았냐면, 여자분이 한국말을 아예 못 하시더라고. 분명 짐가방 안에 한국어 교재가 반듯하게 들어있는 걸 내가 봤는데도. 결혼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는데 어떻게 한국말을 모를 수가 있을까? 난 남자의 태도를 본 뒤 그 답을 낼 수 있었어. 그 남자는 그냥 자신의 부인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던 거야. -p.49, 당신이라는 존재

경찰은 경찰이기 이전에 한 명의 직장인일 뿐이야. 적극적인 업무처리를 하면 할수록 직장 내에서 나의 입지가 위태로워지고 잘못되면 몇 년 치 연봉만큼의 액수를 물어줘야 하거나, 더 잘못되면 아예 직장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누가 영웅처럼 나서겠어. 현장의 영웅을 원한다면 영웅이 마음 편히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줘야 해. 맨땅의 헤딩으론 이마만 깨질 뿐이니까. -p.58, 사라져줘 제발

할머니는 이름이 없대. 아들 아들 노래를 부르던 시대에 딸로 태어난 죄로, 아빠라는 사람은 자신을 안아준적도 일평생 없었다는군. 그리고 얼굴이 넓적하니 못생겼다고 늡때기, 그러니까 얼굴이 넓다는 뜻의 사투리를 이름 대신 부르면서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더라. -p.62, 강늡때기

교육이 주는 힘은 알 수 없어도, 교육이 왜 존재하는지는 알 것 같았던 그런 저녁이 있었어. 적어도 세상을 깜깜하게만 살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할 수 있는 말이 많아지고 볼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내 발걸음을 옮길 곳이 넓어지도록 하기 위한 원동력. 결국 민들레 홀씨를 날려주는 것처럼 나라는 존재를 멀리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뒤에서 받쳐주는 바람과 같은 역할. 그게 교육의 중요성이며 존재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 -p.64-69, 강늡때기

언니, 가난은 죄였어. 정말로,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은 원매를 힘들게 하는 가난이었지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노력하던 원매가 아니었는데. 내 앞에 원매가 나타나 괄괄한 웃음을 지으며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를 향해 유쾌하게 호통쳐주길 바라지만 원매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고, 그녀의 가난은 여전히 죗값을 치르지 않고 있어. -p.108,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장애를 가진 아이는 부모의 아픈 손가락이 아니라 매 순간 넘어져야만 하는 절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어. -p.122, 안녕 언젠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