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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책

《시절일기》 - 김연수

by Sibnt 2019.09.12

《시절일기》 - 김연수 [레제]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어떻게든 남겨두고 싶었고, 그래서 글과 사진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생각과 마음을 어떠한 형태로든 남기고 쌓아놓는다면 나중에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는 기록이 되지 않을까. 《시절일기》는 한 작가가 한 시절을 담아놓은 일기장이다. 개인의 시절이기도 하고 우리의 시절이기도 한 그 시절의 기록. 나는 이 기록을 읽는 내내 쓰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한 번 더 살 수 있다. -p.20, 2017년 1월 30일

책의 가장 첫 부분, 일기에 대한 내용이 가장 인상 깊었다. 나 또한 기록하는 삶을 살고 싶은 욕망 때문일 것이다. 나이 서른이 넘어 이제야 표현하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 계기는 외로움이었던 것 같다. 내 마음을 어디에도 표현할 수 없어서 허공에 외치듯 SNS 공간에 조금씩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표현한 것들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글, 사진, 그림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도구와 언어로 표현해내고 있었다. 아마도 그때 처음, 칭얼거림에 가까운 내 표현을 잘 다듬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잘 표현하고 싶은 욕심은 부담으로 다가오고, 표현하는 자체를 멈추게도 했다.

글쓰기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일기 쓰기를 권하고 싶다. 누구도 읽지 않을 테니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써라. 대신에 날마다 쓰고, 적어도 이십 분은 계속 써라. 다 쓰고 나면 찢어버려도 좋다. 중요한 건 쓰는 행위 자체이지, 남기는 게 아니니까. 이것이 바로 『일기, 나를 찾아가는 첫걸음』에 나오는 일기 쓰기 지침이다. -p.19, 2017년 1월 30일

저자는 부담을 덜어내는 것과 잘 표현하는 것의 방법으로 ‘일기 쓰기’를 권한다. 자주 쓰고, 많이 쓰다 보면 결국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이 부분을 읽은 이후로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자기 전 컴퓨터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도 그날의 생각과 마음을 담았다. 이렇게 꾸준하게 쓰다 보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막연하지만 앞으로 표현하고 싶은 방향이 있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분노할 수 있는. 함께 손잡고 나아갈 수 있는 그런 표현.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그곳을 향한 방향성. 나의 표현이 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넘어 곳곳을 비추는 작은 빛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작은 보탬으로.

 


* 책 속 밑줄

사전에서는 일기를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나라면 '읽는 사람이 없는, 매일의 글쓰기'라고 말하겠다. 심지어는 자신조차 읽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써야 일기가 된다. 일기를 쓰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쓰는 행위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p.17, 2017년 1월 30일

읽는 사람이 없을 것. 마음대로 쓸 것. 이 두 가지 지침 덕분에 일기 쓰기는 창의적 글쓰기에 가까워진다. 한 번이라도 발표를 목적으로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누군가 읽는다고 생각하면 한 글자도 쓰기가 싫어진다. 글쓰기가 괴로운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 글쓰기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일기 쓰기를 권하고 싶다. 누구도 읽지 않을 테니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써라. 대신에 날마다 쓰고, 적어도 이십 분은 계속 써라. 다 쓰고 나면 찢어버려도 좋다. 중요한 건 쓰는 행위 자체이지, 남기는 게 아니니까. 이것이 바로 『일기, 나를 찾아가는 첫걸음』에 나오는 일기 쓰기 지침이다. -p.18-19, 2017년 1월 30일

우리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한 번 더 살 수 있다. -p.20, 2017년 1월 30일

가족일지라도 그를 타자로 인정할 때 관계는 정립된다. -p.38, 2013년 12월 6일

어떤 슬픔으로도 그 타자를 애도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타자에 대한 윤리의 기본은 그냥 불편한 채로 견디는 일이다. 이렇게 견디기 위해서 소설가들은 소설을 쓰고 가목들은 영화를 만들고 시인들은 시를 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견디기 위해서 사람들은 소설과 시를 읽고 영화를 본다. 애도를 완결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도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은 날마다 읽고 써야만 한다. -p.44, 2010년 2월 4일

글 쓰는 행위는 희생이며, 경제적인 상황이나 감정적인 상태가 나쁘면 나쁠수록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낭만적인 개념의 글쓰기에 대해 저는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작가는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주 건강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작품의 창작은 좋은 건강 상태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며, 미국의 ‘잃어버린 세대’ 작가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p.52, 2013년 12월 19일, 마르케스의 말 인용 中

그러므로, 이것은 완벽한 실패다. 이 실패 앞에서 신속한 위로를 원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의 분석으로, 하룻밤의 토론으로, 신문의 특집 기사로 단숨에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미심쩍은 부분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까지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게 낫다. 만약 이것이 적폐의 소산이라면, 기꺼이 이 적폐를 마주하되 요령부득의 문장을 읽을 때처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아주 작은 진실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가장 어두운 무지의 상태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완벽한 실패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통로는 완벽한 절망뿐이다. -p.62, 2014년 5월 19일

어떤 풍요인가라는 질문 없이 경제적 풍요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기 때문에, 우리 세대는 이 끔찍한 실패 앞에서도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사회 불안과 분열을 야기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는 정부를 투표로 뽑은 것이다. 이런 세상이라면 다시 이십 년이 지나 더 많은 평형수를 줄이고 더 많은 화물을 적재한 위태로운 여객선을 계약직 선장이 운행한다고 해도, 그래서 이십 년 전의 서해 훼리호와 마찬가지로 이십 년 뒤의 또 다른 여객선이 우리의 손자들을 태우고 가라앉는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하나도 없다. -p.64, 2014년 5월 19일

세월호 참사가 아니었다면, 내가 배에 평형수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배에 올라탈 때마다 직접 평형수를 점검할 수는 없으니 선사 측을 믿어야만 한다. 그런 측면에서 평형수는 비용이 아니라 신뢰를 뜻한다. 이 신뢰를 비용으로 여겨 줄이려는 노력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p.86, 2015년 4월 10일

어른들이 이런 가능한 마음을 꼭 붙들고 있는 동안, 그 소년은 어떤 꿈을 꿨다. 그러니까 소녀의 눈으로 멀어지는 자신을 바라보는 꿈. 가능한 마음들이 저마다 자기부터 이해해달라고 아우성치는 이런 세상에서, 소년은 그런 불가능한 꿈을 꿨다. 글쓰기에도 꿈이 있다면,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런 꿈을 꾸기 위해서 작가가 신이 될 필요는 없다. 아니, 그 누구도 신이 될 필요는 없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p.98, 2016년 4월 18일

이어령 선생의 축사가 귀에 들어왔다. “라틴어에서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입니다.” 진리는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알레테이아’ 역시 부정어 ‘a’와 망각을 뜻하는 ‘leteia’의 조합이라고 한다. 진실한 것은 잊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만이 진실이 되리라. -p.107, 2014년 4월 22일
그러므로 사랑은 그 부재를 노래할 때 확실히 표현될 수도 있겠다. 말하자면 없어진 뒤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물이나 공기 같은 것, 없어지면 우리에게 치명적인 것, 그러나 있을 때는 그 존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기 때문에. -p.112, 2014년 12월 8일

남산타워에 그토록 끌렸던 까닭은, 아마도 그래서였으리라. 거기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서울에서 누군가는 천국에라도 온 것처럼 기뻐하고 누군가는 지옥에 떨어진 죄인처럼 괴로워할 테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남산타워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거대한 눈동자처럼 서 있었기에. -p.127, 2015년 5월 6일

그러므로 자살은 몸을 향한 마음의 공격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음은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한다. ‘차마 그럴 수가 없다’는 이 마음은 너무나 인간적이라서 언제나 눈물겹다. -p.141, 2015년 2월 5일

겸손은 그저 타자가 몹시 형편없는 인간일지라도 그에게 아직도 가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섬세한 지각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 우리가 오늘날 ‘드러내지 않기’라고 부르는 것의 기원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p.163, 2017년 4월 4일, 피에르 자위, 《드러내지 않기》 中

독자가 읽는 책은 작가뿐만 아니라 도서계 전체가 기여해서 만든 공동의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p.234, 2011년 5월 24일

이때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지우기 키였다. 지우기 키를 더 많이 이용할 때, 즉 쓰고 지우기를 더 많이 반복할 때 어떤 소설이 완성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p.242, 2017년 1월 13일

사랑이 막 끝났을 때였다. 지훈도 그 고양이처럼 어둠 속에서 겁에 질린 채 웅크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먹이를 내미는 119 대원도, 힘을 내라고 응원하는 초등학생들도 없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가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아갈 수 있는 예전의 나 같은 건 없다는 걸, 지훈은 그때 깨달았다. 애당초 원해서 빠진 게 아니었기 때문에 원한다고 빠져나올 수도 없었다. -p.313, ps 사랑의 단상, 2014년

자신은 이제 새들이 모두 날아가고 난 뒤의 빈 나무 같은 사람이 됐다고 지훈은 생각했지만, 그 기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한번 시작한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어떤 사람도 빈 나무일 수는 없다고, 다만 사람은 잊어버린다고, 다만 잊어버릴 뿐이니 사람은 기억해야만 한다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그들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p.330, ps 사랑의 단상,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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