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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책

《두 번째 페미니스트》 - 조한영교

by Sibnt 2019.09.06

시작은 가벼웠다. 책방에서 소개해주는 책 중 하나였고 나중에 한 번 읽어볼까?'하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북토크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궁금했다.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무게가 실렸다. 북토크 당일에 책을 수령하기로 했었는데, 읽을 수 있는 만큼 읽고 참여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책방을 찾았다. 책을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펼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페미니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몇 권의 책을 통해서이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나쁜 페미니스트》,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이갈리아의 딸들》 등, 책을 통해서 본 여성이 살아가는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나의 익숙함을 바꾸려 노력하면서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왠지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워낙 페미니즘의 영역이 넓고, 그중에는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고…. 잘 알지 못하기에 거리를 두고 있었다. 《두 번째 페미니스트》의 제목과 표지를 보고 선뜻 펼쳐보지 못했었지만, 저자가 남성이고 육아를 하고 있는 아빠라는 말에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궁금해졌다.

책을 읽고 나서 떠오른 단어는 '사랑'이었다. 사랑책이다. 사랑은 사람을 이렇게 아름답게 살 수 있게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랑에는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는데, 많은 남성의 경우 그것을 '돈'으로 연결 짓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반면 저자의 사랑에는 저항이 있었다. 익숙한 것들에 대한 저항. 편안한 것들에 질문해보는 저항. 익숙한 것이 혹 내가 가진 권력이라면 그것을 기꺼이 내려놓으려 몸부림치는 저항. 사랑을 위해 차별적 관념, 시선, 언어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페미니스트로서의 몸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의 순간을 긴장 속에서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남성으로서 범접할 수 없는 세계는 온전히 '이해'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인식'으로 접근할 수도 없었다.
- p.20, 나의 페미니스트 연대기 中 -

살아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순간을 긴장 속에서 지내야 했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매 순간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차별적인 언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자라오며 익숙하게 자리 잡은 시선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식적인 수준을 넘어 실제로 살아내야 한다. 또한, 함께 살아내야 한다. 연대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그 힘으로 살아내야 한다. 저자가 그렇게 살아내었고 계속 살아내는 것처럼, 나도 살아내고 싶다.

 


* 책 속 밑줄

그러니까, 그게 영 불편했다. 그게 영 이상했다. 내가 그 이상한 세계에서 너무도 편히 지냈다는 사실이. 여성들은 그 이상한 세계 속에서 계속 상해가고 있는데 남성인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김정란 시인이 사랑하는 "금이 간 영혼"은 그렇게 탄생하고 있었다. 나의 세계는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남성으로 살아왔던 계절이 저물어 가고 있음을 예감했다. 금이 한번 가기 시작하자 멈출 수 없었다. -p.16, 나의 페미니스트 연대기

페미니스트로서의 몸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의 순간을 긴장 속에서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남성으로서 범접할 수 없는 세계는 온전히 '이해'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인식'으로 접근할 수도 없었다. -p.20, 나의 페미니스트 연대기

너랑 한번 깊게 만나 보고 싶어. (미인은 감은 눈을 뜨고,)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너랑 함께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싶어, (미인은 다시 눈을 감고,) 너랑 함께하지 못해 후회하기보다, (미인은 다시 눈을 뜨고,) 차라리 함께 아프고 싶어.
미인은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홀연히 떠났다. 그리고 며칠 뒤 문자메시지가 왔다.
그래. 그러자. 같이 아프자. -p.35, 여인, 미인, 연인 그리고 애인

아이를 기다리면서 만나게 되는 언어들이 있다. 자궁, 유모차, 산모 수첩 등등. 기존 젠더 관성이 내포되어 잇는 이런 낱말들을 고쳐 불러본다. 아들이 자라는 집이라는 듯의 자궁이 아니라 세포가 자라는 집이라는 의미의 포궁으로. 유모차가 아니라 유아차로. 산모 수첩이 아니라 아기 수첩으로. -p.92, 언어의 경계에서 덜컹거리며 말하기

역시, 지혜는 전승되어야 한다. (오직 여성들만이 지혜를 전승해주었다는 것을 꼭 밝히고 싶다. 남성들에게는 애는 저절로 커, 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p.98, 야만의 육아법

나는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영감을 얻었는데, 우선 '품'이었다. 아기를 늘 안고 다니는 품의 세계. 그들은 아기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언제나, 어디서나 아기를 품에 품고 다녔다. 다음으로 곁이었다. 조산사, 이웃 할머니들, 동네 꼬마들까지 한 아이의 출산과 양육에 한몫해주는 곁의 세계. 마지막으로 '아버지'. 양육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여성을 보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야말로 주체였다. -p.100, 야만의 육아법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거대한 슬픔에 젖곤 했는데, 지금은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기만 해도 몸이 바로, 아프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떠올려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질감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어머니가 뉴스를 보면서 왜 우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서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여성이 돌봄을 통해서 생명의 질감을 육체로 직접 느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p.114, 새끼들, 생명의 질감

사랑한다, 행복하다는 말을 가장 나중에 쓰고야 마는 나 같은 사람이 요즘은 나도 모르게 사랑해, 행복해라는 말을 중얼거린다. 품의 세계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p.158, 엄마에게 젖이 있다면 아빠에게는 품이 있다

N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의 문학적 재능을 아껴주시는 든든한 선생님. 요즘 육아에 매진하고 있다는 나의 안부에 "아이는 저절로 크는 거야. 너무 신경 쓰면 작업 못 해." 하셨다. "선생님이 아이를 키워보지 않으셔서 그러시는 거예요. 저절로 크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다고요."라고 대꾸했다. 나는 점차 용감해지고 있다. -p.191, 순간일지 영원일지

장/애인과 함께 살고 있는 나를 두고 사람들은 은근한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바보들. 내가 애인으로부터 얼마나 다정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 애인이 있음으로 이 세계를 다르게 살아볼 수 있는 용기를 얼마나 많이 얻고 있는지, 애인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세계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얼마나 깊게 만끽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p.202

사막에서는 자칫하면 서서히 말라 죽는다. 신체 내 수분이 말라가는 걸 사막을 걷는 사람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막을 횡단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절대적 규칙이 있다. '반드시' 물을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챙겨 마시기. 육아도 그렇다. '반드시' 영혼을 위한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서서히, 눈치채지도 못하는 사이 사막이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p.204

남성으로서 내 여자를 지켜야 한다는(=단속해야 한다는) 몹쓸 가부장적 무의식은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를 나름 부지런히 한 나에게도 있었다. 이것은 여성을 단속시킬 문제가 아니라 남성을 개조시켜야 하는 문제임에도 나는 애인에게 그따위 말을 해버렸다. 다른 여자는 되지만 내 여자는 안 되는 내 안의 젠더 정치가 작동하고 있었다. -p.221, 애인은 헐벗고 다닌다

답장: 아기가 나오니 열심히 돈 벌어야겠다는 결심보다는, 마음을 다해서 아기와 아내를 돌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p.241, 돈 벌어야지에서 돌봐야지로

아이는 오늘 '노을'을 처음 발음해보았다. 너의 고향은 노을이란다, 라고 거짓말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노을이 예뻐 보이는 오늘이다. -p.279, 낱말 연습

나는 다시 탄생했다. 내 안의 여성-유령과 함께 두 번째 페미니스트로. 누군가에게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첫 번째 사람이 아니라, 그 곁에 위치한 두 번째 자리에서 "나도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다시 선언하며 책임을 다하려는 두 번째 사람으로.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는 첫 번째 사람이 아니라, 그 곁에 위치한 두 번째 자리에서 "저도 페미니스트가 되려고 합니다."라고 응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있으려 한다. 두 번째 페미니스트로서…… -p.290, 두 번째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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