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개/책

《산 자들》- 장강명

by Sibnt 2019.09.06

《산 자들》- 장강명

《산 자들》은 <알바생 자르기>, <대기발령>, <공장 밖에서>, <현수동 빵집 삼국지>, <사람 사는 집>, <카메라 테스트>, <대외 활동의 신>, <모두, 친절하다>, <음악의 가격>,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 10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편소설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소설을 읽을 때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는 편인데, 현실감까지 더해지니 실제로 여러 인생을 짧게 살아본 느낌이다. 단편 속에서도 여러 인물이 있어서, 각 인물의 입장에 서보았다. 각자의 씁쓸함이 느껴져서 어느 한쪽만 지지할 수 없었다. 실제의 삶도 이렇게 다양한 입장들이 겹치고 충돌하는 거겠지, 생각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다 알 수 없는 세상 곳곳을 드러내 주는 이야기. 사회에 어떤 문제들이 있고, 그 문제들이 사람들을 어디로 몰아가는지, 그것을 간접경험 할 수 있는 이야기. 나는 이렇게 이야기 속에 숨는 것일까, 아니면 이야기를 통해 문제의식을 기르며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일까.

 


* 책 속 밑줄

이 나라에는 모든 땅과 집에 주인들이 있다. 땅과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 땅 위에 있는 집을 허물고 새로 지을 권리가 있다. 한 동네에 사는 주인들이 모여, 동네를 통째로 허물고 새로 짓자고 결의할 수도 있다. 그 집을 갖지 못한채, 거기서 살기만 하는 사람들은 아무 권리도 없다. -p.163, 사람 사는 집

최종 면접은 언제냐고 누군가 물었다. 몇몇 사람이 웃었다. 인사팀장은 아마 다음 달 중순일 거라고 대답했다. 최종 합격자 발표일을 누군가 물었을 때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웃었다. 출근은 언제부터 하게 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모두 웃었다. 몇 명을 뽑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아무도 웃지 않았다. "일단 티오는 한 명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인재가 있다, 그러면 두 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사팀장이 대답했다. -p.220, 카메라 테스트

신은 그런 건 오히려 회사가 직원들에게 말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내부 고발은 꼭 필요한 일이니 어디로 신고하면 된다든지, 아니면 반대로 최대한 팀 안에서 대화로 해결하라든지. 어차피 다들 시키는 대로 할텐데요 하고 그는 말한다. "최소한 그 부정행위가 어떤 건지라도 알려 주고 물어봐야죠. 그 상사가 뭘 어쨌다는 겁니까? 커피믹스 스틱을 몇 봉 집에 가져갔다는 겁니까, 아니면 시체를 토막 내서 비품 창고에 숨겨 놓았단 말입니까?" -p.234, 대외 활동의 신

반복 동작으로 머리가 멍해질 때에는 그렇게라도 주의를 환기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실신해서 쓰러진다. 발바닥이 아프거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 울음이 나올 것 같으면 악을 쓰는 게 유용한 요령이다. 얼굴을 찡그리면서 눈물을 땀인 것처럼 위장하면 된다. 몇 시간 동안 거울로 제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과 대화도 없이 땡볕과 아스팔트 열기 속에서 고행을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감각이 희미해진다. 그럴 때에는 악을 써서 제 목소리를 귀로 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현실감을 되찾아야 한다. 그렇게 악을 쓰는 건 일종의 대화이기도 했다. 나 죽을 것 같지만 조금 더 버틸게, 그러니까 너희도 버텨 하는.
신은 자신이 오래전부터 악을 써 왔다고 생각했다. -p.265, 대외 활동의 신

그런 생각 하면 기분 이상하죠. 마트에서 어떤 물건이 더 싼지 살피고 할인 쿠폰을 모으고 포인트 챙기고 백화점 세일 기간을 노리고 휘발유 가격을 확인하고, 그런 노력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져요. 그래서 돈 얼마나 아낄 수 있다고…… 집 사고파는 타이밍 한번 잘 맞으면 다 끝나는 건데. -p.273, 모두, 친절하다

네가 어른이 되면 의사도 변호사도 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밀려날지 몰라. 인공지능 로펌이 월 8800원에 무제한 법률 상담을 해 줄지도 모르지. 한 달에 2만 9900원을 내면 정수기처럼 로봇 의사를 집에 설치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때는 모든 것의 가격이 같아질 거야. 법무, 의학, 투자, 분석, 관리, 강연, 방송, 교육, 소설, 청소, 운전, 모든 게. 유사 연애조차도. 개개인의 취향을 파악한 맞춤형 월정액 가상현실 소프트웨어에게 아이돌들이 자리를 내줘야 할 테니까. -p.335, 음악의 가격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