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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책

트랜스젠더, 차별과 건강, 《오롯한 당신》

by Sibnt 2019.09.06

트랜스젠더, 차별과 건강, 《오롯한 당신》 - 김승섭, 박주영, 이혜민, 이호림, 최보경 지음

트랜스젠더. 익숙하지 않은 단어이다. 옛기억 어딘가에 '트랜스젠더 연예인'만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나에게 트랜스젠더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고 인지조차 못한채 살아왔다.

이 책은 현실에서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한 자료이다. 그리고 그들의 현실을 외치고 있는 하나의 목소리이다.

책에는 트랜스젠더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 밑 과정, 성별 이분법의 세계에서의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의 건강문제, 트랜스젠더를 진료하고 수술하는 의사 두 분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책을 펼치면 서문 다음으로 용어 정리가 나오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관심 없이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해 벌써 부끄러워졌다. 무관심에 대한 부끄러움은 이어지는 장마다 계속되었다. 아, 나에게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일 수 있었겠구나. 내가 '무지' 했구나. 이런 생각들…. 법으로 정해진 성별과 내가 인지하는 성별이 달라서 감당해야 하는 시선, 불편함, 두려움. 그리고 내가 인지하는 성별로 살아가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경제적 어려움, 건강의 위협까지….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힘들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 제일 마음에 걸린 부분은 건강 문제이다. 그들은 그저 성별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 한 걸음 내딛는 것인데, 거기에는 건강의 위협이 따른다. 일단 트랜스젠더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 의료인력이 부족하다. 의학 교육 과정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에 대한 지식 및 기술 수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트랜스젠더를 편견없이 대하는 문화적 역량에 대한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병원에서의 차별적 시선 또한 그들을 밖으로 내몰고 건강을 위협한다. 건강보험이 의료적 트랜지션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경제적 문제에도 부딪치고 경제적 문제는 건강문제(트랜스젠더 스스로 호르몬 처방이나 거세하는 등 자가시술로 인한)로 이어진다.

책 한 권 읽었다고 나의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내가 보고 있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무지'하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다. 사실 여기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내 인지를 바꾸고 시선을 바꾸는 노력을 조금씩 해나가야겠다.

 



* 책 속 밑줄

연구를 하며 가장 자주 떠올린 단어는 '무지'였다.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하는 과정은 모든 게 새로웠다.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단어에 익숙해지고 그 뜻을 배워야 했던 면도 있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다. 사람은 남성과 여성으로 태어나고 살아간다는 그 고정관념을 나는 오랫동안 의심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연구자로서 쓴 수많은 논문에서 성별이라는 변수는 남과 여로 고정된 것이었으니까. 트랜스젠더의 목소리에는, 내게는 더없이 '자연스럽고 익숙한' 어떤 것들로 인해 고통을 받는 누군가가 살아가는 세상이 있었다. 은행에서 신원 확인을 위해 신분증을 보일 때,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그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나는 짐작조차 못했다. -p.19,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연구실 학생들과 연구를 기획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할 때, 충분한 사전 검토와 고민이 없으면 그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고 가르쳤다. -p.23,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를 갖는 것은 삶의 행복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수 있는데, 의료적 트랜지션을 시작하고 나면 자신의 난자와 정자로 아이를 갖기 어려우니 그 전에 난자와 정자를 추출해서 보관해 놓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인지를 조사한 연구였다. …. 이 논문을 읽고 나서야 나는 트랜스젠더의 가족구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p.36,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의료적 트랜지션을 건강보험 보장 항목에 포함시키는 결정은, 드러내 말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역사를 감당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써 온 그들에게 한국 사회가 보내는 작은 전언이 될 것이다. 당신 앞에 놓인 수많은 장벽에 무지했던 우리의 과거를 반성하겠다고. 늦었지만 이 문제 하나만이라도 우리가 함께 감당하겠다고. 그러니 당신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p.46,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나를 찾아온 한 부모님이 내 손을 붙잡고 물으셨다. "교수님, 교수님은 연구를 많이 하시니까 아실 것 같아요. 트랜스젠더인 내 아이가 이토록 불안하고 힘든 게 트랜스젠더로 태어나서 어쩔 수 없는 건가요, 아니면 이 사회가 내 아이를 받아주지 않아서 그런 건가요? 저는 그걸 꼭 알아야겠어요." -p.47,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중학교 때 조용히 지내던 편인데, 그때도 상담 선생님과 말을 해 본 적이 있었어요. "제가 남자로 태어났지만, 저는 여자예요." 그렇게 얘기했어요. 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나중에 어떻게 할 거다라고 설명을 드리면서……, 제 입장에서는 설명을 잘 드린 거거든요. 근데, 선생님이 딱 한마디를 했어요. "이 개새끼……." 따졌죠. 제가…… 왜 개새끼냐고요. 그러니까 "니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내 종교는 그런 걸 허용하지 않는 종교인데, 내가 어떻게 너를 이해해 줄 수 있겠느냐." 이러시더라고요. -p.67, 성별 이분법의 세계는 왜 균열되어야 하는가

이와 관련해서 해당 보고서에서는 모든 트랜스젠더가 의료적 트랜지션을 원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성별을 정정하려고 할 때 외부 성기 수술 같은 성전환 수술을 받았는지 확인하는 것은 트랜스젠더에게 사실상 국가가 수술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p.117, 모두에게 문턱 없는 병원을 위하여

성소수자 운동의 오랜 슬로건,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We Are Eerywhere)'가 말해 주듯이, 트랜스젠더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 계속해서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p.125, 모두에게 문턱 없는 병원을 위하여

성별정체성에 따라 평균적으로 소요되는 비용을 계산한 결과, 비용 부담이 가장 높은 수술은 성기성형수술(트랜스여성 범주: 1514.8만 원, 트랜스남성 범주: 2057.1만 원)이었다. -p.138, 모두에게 문턱 없는 병원을 위하여

미국 트랜스젠더의 호르몬 요법과 성전환 수술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28개의 논문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은 응답자 1,833명 중 80%에서 삶의 만족도가 증가했다. -p.159, 모두에게 문턱 없는 병원을 위하여

살림의원 개원을 준비할 때 함께 했던 조합원 중 트랜스젠더가 있었는데,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트랜스젠더 진료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진료하는 곳은 안전했으면 좋겠고, 진료를 하는 의사도 믿을 만하면 좋겠다. 트랜스젠더인 자신이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는 의료 기관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당시 나는 트랜스젠더의 호르몬 치료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 친구에게 나는 트랜스젠더와 관련해 의과대학에서 배운 적도 없고, 가정의학과 수련을 받을 때도 배운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어차피 다른 의사들도 다 몰라, 어차피 다 모르는 거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공부해서 진료해 주면 좋겠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용기를 내서 살림의원에서 진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p.183, 우리에겐 이런 의사가 필요하다

직원 1명이 트랜스젠더가 되어 살림의원을 검색하고 직접 진료받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해 보았다. 직원들이 이런 경험을 통해서 트랜스젠더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원한다. -p.193, 우리에겐 이런 의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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