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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책

《한 번쯤, 남겨진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 안희주

by Sibnt 2019.08.31

《한 번쯤, 남겨진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 안희주

책방에서 제목에 이끌려 손에 든 책이다. 쓸쓸한 분위기의 제목과 표지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남겨진 사람의 마음은 어떠할까,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어서, 같이 아파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함께하고 싶어서, 그런 마음에 선택한 책이었던 것 같다. 감히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스무 살 때, 저자의 오빠는 심장마비로 곁을 떠난다. 함께 있던 가족이 떠난 상실감은 얼마나 컸을까.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아팠을까. 누군가를 영영 떠나보내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니었을까. 아니, 누군가를 떠나보내기에 괜찮은 나이란 존재하는 걸까. 떠오르는 질문과 함께 슬픔이 짙어진다.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것 같다.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여기다가, 갑작스럽게 주변으로 찾아오는 죽음은 마음을 내려앉게 한다. 저자는 '상실'에 대해 조심스럽게 나눈다. 비슷한 상실감을 안고 괴로워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넨다.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길 바라면서.

 


* 책 속 밑줄

나, 아빠한테 사과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때 오빠가 그렇게 됐을 때, 난 사실 아빠를 원망했어요. 집에 같이 있었는데 오빠의 상태를 몰랐다는 이유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원망의 대상이 돼본 뒤에야 알았어요. 원망은 내가 받은 상처를 이겨내기 위한 방어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무기라는 걸. 나에겐 방패지만 상대에겐 창으로 느껴지는 그런 무기라는 걸. 그때 아빠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괴로웠을지 짐작하려고도 하지 않아서, 내 슬픔이 너무 커서 아빠의 슬픔은 상상조차 하려 하지 않아서, 정말 미안해요. -p.45, 나를 용서하는 법

"니가 왜 떨어졌는지 아냐?" "몰라. 왜 떨어진 건데?" "얼굴 때문이잖아. 못생겨서 떨어진 거야. 앞으론 면접 안 보는 데로만 골라서 가." …. 나는 끌어안고 있던 베개를 들고 오빠의 등짝을 내리쳤다. 그렇게 맞으면서도 오빠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낄낄대기만 했다.
"네, 안녕하세요. 오빠가 맨날 저 욕하죠?" "아뇨. 오빠가 얼마나 자랑을 많이 하는데요. 자기 동생은 학교, 집, 독서실밖에 모른다고, 공부도 잘하고 참 착하다고. S대도 1차까지 붙었다고. 자랑 많이 했어요." -p.81, 83,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어떤 식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남겨진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상실이 있고, 조금씩 결이 다를 그 모든 상실을 내가 제대로 잘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형제를 잃은 상실은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음에 어떤 그늘이 드리워지는지, 몸에 어떤 슬픔이 새겨지는지, 기억에 어떤 자물쇠가 채워지는지, 앞으로의 시간에 늘 누군가가 놓쳐버린 그 시간이 어떤 식으로 겹쳐지는지. 무엇을 부정당하고, 무엇을 억압하며,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 어딘가에서 나와 비슷한 상실감을 안고 홀로 괴로워하고 있을지 모를 누군가에게 내 목소리가 가닿는다면 좋겠다. 나는 그랬는데, 당신은 어땠나요? 말을 걸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건네는 이야기가,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저 여기 있어요 손 들고 일어난 내 행위가 누군가의 마음에 위안으로 다가가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p.100, 손가락이 닮았다

채식을 선언한 뒤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왜?"였다. 물론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을 터이나 대부분 그 말투 속에는 단단한 돌멩이가 들어 있었다. 나를 설득하지 못할 정도의 이유라면 그냥 먹으라는, 괜히 까탈스럽게 굴지 말라는, 너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이 불편해진다는 돌멩이…. 채식은 왜 해? 고기 안 먹으면 기운 못 써. 채식하면 너 연애 못 한다. 돌멩이는 다양한 방향에서 다양한 각도로 날아왔다. -p.130, 내가 나로 살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그리고 그때부터 생각했다. '폭력'이라는 것에 대해. 물리적인 폭력만 폭력이 아니라, 거친 말을 쏟아내는 폭언만이 폭력이 아니라 누군가를 나의 뜻대로, 개인을 전체의 뜻대로 조종하려는 것 또한 폭력이 아닐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공동체를 파괴하지도 않으며, 그저 개인의 취향과 선택일 뿐인 문제에서도 해라, 하지 마라 간섭하는 것 역시 폭력이 아닐까? 내가 불편하니 네가 희생해라,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해라, 너의 취향을 다수에게 맞추라는 건 폭력이 아닐까. -p.130-131, 내가 나로 살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슬픔에는 무게가 없다. 아니, 슬픔의 무게는 수시로 변하기에 붙잡고 측정할 수 없다는 게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아무렇지도 않다가 갑자기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굴러떨어지듯 가슴을 구르며 쓰린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내내 바람처럼 잔잔히 가슴을 스치며 씁쓸함을 곱씹게도 한다. 돌부리로 자라나 걸려 넘어지게도 하고, 계절이 변하듯 어김없이 찾아와 울컥거리게도 한다. 어떤 슬픔이든 겪고 있는 사람은 아프기 마련이다. -p.157-158, 슬픔에는 무게가 없다

사람들이 말하는 '꿈을 가지라'는 말 속에는 '꿈꾸는 일을 해서 성공해', '그 일로 돈을 벌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돈만 버는 삶은 의미가 없고,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돈은 벌지 못하는 삶은 가치가 없다. -p.199, 꿈에 대하여

나는 자주 생각의 덫에 걸린다. 내 안전을, 안녕을 지키기 위해 설치해놓은 덫에 내가 걸려 자꾸 멈춰 선다. 갈림길에 주저앉아 끝없이 생각만 한다. 한곳을 정하고 쭈뼛쭈뼛 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쉼 없이 의심한다. 이 길이 맞는 걸까?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그래서 또 자꾸 멈춰 서고 뒤를 돌아본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다. -p.226, 나는 늘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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