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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책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에 대한 기록,《제7의 인간》

by Sibnt 2019.08.27

《제7의 인간》 - 글 : 존 버거 / 사진 : 장 모르 / 번역 : 차미례

‘존 버거’라는 작가 이름이 읽는 책과 가는 책방에 자꾸만 등장해서 궁금했었는데, 최근에 발견한 <그렇게 책이 된다> 책방 사장님의 친절한 설명에 ‘입문’하게 되었다.

존 버거 작가의 책 중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를 전자책으로 처음 읽었다. 페이지 수가 많지 않았고, 읽고 싶은 책들은 쌓였기에 빠르게 읽어나갔다. 눈으로는 분명 글자를 읽고 지나갔지만, 페이지가 넘어가니 생각이 나지 않았다. 평소 얼마나 대충 책을 읽고 있는가, 반성하게 되었다.

《제7의 인간》은 두 번째로 읽은 책이다. 사진이 있는 책이기도 했고, 종이책으로 읽으면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구입했고, 천천히 읽어나갔다.

이민노동자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이민노동자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 이민노동자로 가서 착취당하고 열악한 생활을 감당해야 함에도 그들에게는 그 삶이 생존하는 방법이었다. 그 삶으로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을 동경했다.

존 버거 작가는 이민노동자의 삶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풀어가면서 중간중간 자본주의나 산업구조, 식민주의 등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도 제공했다.

이민노동자의 현실을 더 생생하게 간접경험 할 수 있었던 것은 책에 적절하게 실린 장 모르 작가의 사진들 덕분이었다. 사진들을 보며 나는 이 시대에서 어떤 기록들을 남겨가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아직 막연하긴 하지만 내 자리에서 차곡차곡 기록을 쌓아가는 연습을 하다 보면, 조금씩 뚜렷해지지 않을까.

이 책은 1973~1974년에 쓰였다고 한다. 지금의 현실은 어떨까 궁금하다.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개선되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내가 알지 못하는 그곳에서는 이민노동자들이 견디며 살아내고 있을까. 우리나라에 들어온 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떨까.


* 책 속 밑줄

이민노동자들은 저개발 경제로부터 온 사람들이다. ‘저개발’이란 말은 외교적인 창피의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개발도상’이란 말로 대체되었다. ‘개발도상’이란 말은 ‘개발된’ 것과 명확히 구별된다. -p.23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한 사람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이 마을을 평생 동안 알고 있었다. 떠나는 순간에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강도(强度)는 거의 그의 의지력만큼이나 강력하다. 마을을 떠남으로써, 그는 스스로 그런 느낌을 자초한 것이다. 그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의 혼란은 많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가 돌아올 때 그의 삼촌은 살아 계실까? 작별을 고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따르는 일이다. 그가 승리해서 돌아올지 패배해서 돌아올지 누가 알 것인가? 도시가 베풀어 주는 것은 거기서 성공하는 사람들에게지,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건 아니다. 그는 도시가 주는 상품들이 검은 물결 위에 떠 있는 모습을 그려 본다. 지는 사람은 그 물속에 빠져 죽을 것이다. 그에게 잘 가라고 말하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은 아무 대답도 제공해 주지 않는다. -p.35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으라는 굴욕적인 요구가 말이다. 지휘를 맡은 관리들이 지껄이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들. 그 검사의 의미. 그들의 몸뚱이에 붓으로 씌어진 숫자들. 그 방의 엄격한 기하학. 남자들처럼 내리닫이 작업복을 입은 여자들. 알 수 없는 약물 용액의 냄새. 그 남자와 비슷한 그 많은 사람들의 침묵. 대다수의 가라앉은, 그러나 고요함이나 기도의 표정은 아닌 시선들. 그것이 정상적인 게 되어 있다면, 그 이유는 그들 전부에게 예외 없이 심상치 않은 중대사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p.56

이민을 가는 것은 인간들이 아니라 기계 관리인부, 청소부, 땅 파는 인부, 시멘트 섞는 인부, 세탁부, 공원 따위이다. 이것이 임시 이주의 의미일 뿐이다. 인간(남편·아버지·시민·애국자)으로 재생되려면 어떤 이민이든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 그에게는 아무런 장래가 없어서 그가 떠나왔던 고향으로. -p.62

이민노동자들에게 가장 형편없는 방을 내어 주는 사람들은 ‘잠 상인들’이라고 불린다. 1인용의 작은 방 하나에 (1세기 전의 하녀방이다) 세 개의 침대를 들여 놓고 있다. 이 세 개의 침대 위에서 서로 다른 근무시간에 따라 아홉명의 남자가 잠을 잔다. 24시간당 침대 셋이다. 그는 한 달에 8파운드씩을―아니면 그의 봉급의 10분의 1을 낸다. -p.95-96

“여기서는 아무것도 취할 수가 없다. 이건 로봇이라도 할 수 있다. 이 생산 라인은 저능아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건 어떤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린 당신들이 생각을 하라고 돈을 주는 게 아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가치 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결국 깨닫게 된다. 그들은 다만 생산 라인 위에 있을 뿐이다. 돈을 위해서, 아무도 자기 자신이 실패작이라고 생각하는 걸 즐겨 할 사람은 없다. 당신이라도 자기가 겨우 조그만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 기분 나쁠 것이다. 당신은 다만 봉급 봉투만을 바라볼 뿐이다―그것이 처자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대답이다. -p.105

3. 언어 장애도 사고 빈발의 원인이다. 경고문의 간판을 익지 못하거나 같이 일하는 노동자들이 소리치는 경고의 외침을 못 알아듣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고도 많다. -p.134

이민은 다른 몇 가지 방식에 있어서도 ‘이상적인’ 노동자이다. 그는 시간 외 근무를 하는 데도 열성이다. 야근을 하라고 해도 기꺼이 한다. 그는 정치적으로 순진무구한 상태에서 도착한다. 다시 말해서 프롤레타리아로서의 경험이 전혀 없다. 시트로엥사의 노동자로 지원해 온 사람들은 방금 프랑스에 도착했다는 증거로 차표를 보여달라는 요구를 흔히 받은 바 있다. -p.147

프랑스에서의 통계조사 결과 이민들의 정신병 발병률이 프랑스 시민들보다도 두세 배나 더 높다는 것이 나타났다. 그러나 정신병이라는 범주 자체가 의심쩍은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민노동자들이 불안과 불행으로 인해서 두세 배나 더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욱 과학적일 것이다. -p.159

이 두 가지 조건은 지하에서 일하는 인부들에게 한 가지 선택권을 제공한다. 그는 마른 곳에서 기계를 가지고 일하거나 아니면 젖은 곳에서 굴착기를 가지고 일할 수 있다. 기계를 가지고 일하는 것은 공기 중에 대단히 고밀도의 분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더 건강에 나쁘다. 마스크가 있기는 하지만 작업의 극심한 강도 때문에 그것을 쓰고 일한다는 것은―산소 흡입량이 줄어들기 때문에―심장을 더 뛰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p.174

그 직접적인 원인들의 뒤에는 일반적인 원인 하나가 있다. 이민노동자들에게 아직도 열려 있는 유일한 선택권은 그의 변형된 미래를 위해―아니면 자신의 미래를 변형시켜 보려는 그의 시도를 위해 돈벌이를 극대화하는 일이다. 계약 회사들은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양자의 관계는 착취적이다. 그러나 이 지극히 다른 이유들 때문에, 양쪽 모두가 되도록 빨리 터널의 끝에 도달하기 위해 애를 쓴다. -p.179

이민노동자들에게 있는 유일한 현실은 오직 일하는 것과 그에 뒤따르는 피로뿐이다. 여가시간이란 것도 이국적인 낯선 것이다. 그로 하여금 자기가 아직 자기의 진짜 삶이라고 믿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어쩔 수 없이 기억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p.185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시키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행동이며, 인간의 조건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다.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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