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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기록

교회오빠를 보고

by Sibnt 2019.06.23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던 영화다. 내 삶을 돌아보게 되는 영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고통이 없어서, 고난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범죄하며 살아가는 걸까. 고통 앞에서, 죽음 앞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나는 그런 고통이 생기면, 믿음을 지켜갈 수 있을까? 이해되지 않고 단절된 것 같은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을까? 자꾸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영화이다.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할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이 사람은, 이제 행복하게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 아내와 딸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내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 고난 받는 그분을 보며 마음이 슬펐다.

예수님의 삶도 사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멋지게 사는 삶을 사셔도 될 것 같은데, 왜 고통받고 죽는 방법으로 자신을 몰아가셨을까. 이관희 집사님은 선택할 수 없는 고통의 삶이라고 하더라도, 예수님은 충분히 피하실 수 있었을 텐데. 그 모든 것을 감당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면서도, 감당하셨을 외로움이 너무나 컸을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진다.

결국,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매일 주님께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게 형식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그래서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 기쁜 삶. 그분을 신뢰하는 삶. 그분을 우선순위에 올려두고 살아가는 삶.


* 영화 속 대사

내 삶을 전체를 봤을 때, 내가 받은 은혜들을 다 계산해보면 '감히 하나님께 원망을 할 수 없다'라는 게 제 결론입니다.

하루라도 더 살기 원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이 하루라는 시간을 통해 더 온전하고 성숙해 질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어서... 그게 삶의 이유....

끝까지 믿음을 지켜내는 게 오빠의 가장 큰 사명이야.

오늘 이 삶이 내 인생에 마지막 날 이라면 이 시간을 누굴 증오하면서 보내고싶지않아.

자기야, 오빠가 요즘 기도제목이 '내안의 나는 죽고, 오직 예수님만 사는 삶' 어떻게 보면 굉장히 멋있는 말이고, 굉장히 어려운 말인데,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나나, 은주나,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상황인 거야.

너를 더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가정을 하면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를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증오하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은 거야.

단절된 느낌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손익계산서를 굳이 작성하자면 아무리 계산해도 항상 플러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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