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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책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아몬드》

by Sibnt 2019.05.01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곁에 있는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공감이란 무엇일까.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 윤재가 상처 속에서 비뚤어진 곤이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또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편견과 두려움, 무관심 등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다가가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다. 아니, 다가가지 않아야 한다. '괴물'로 여기고 멀리 떨어지는 것. 최대한 '다수'에 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을 '지혜롭다'고 여기는 분위기 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윤재를 조금씩 변하도록 영향을 준 사람들이 있었다. '심박사','곤이','도라'. 곁으로 다가와준 사람들. 그리고 머물러준 사람들. 그 사람들 영향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윤재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지금의 나를 좋은 방향으로 변하도록 함께해준 고마운 사람들이 생각난다. 편견을 가지고 멀리했던 사람들도 떠오른다. 나는 무엇을 받고 있는지, 무엇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 책 속 밑줄


의사들이 내게 내린 진단은 감정 표현 불능증, 다른 말로는 알렉시티미아였다.

-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괴물. 그게 너로구나!
그러곤 내 머리통을 아프도록 쓰다듬었다. 그때부터 우리 셋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마치 이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남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꼭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모두 다르니까, 나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도 누군가에겐 정답에 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야, 엄마가 눈앞에서 죽었을 때 기분이 어땠냐?

누구에게도 내 얘기를 털어놓지 않은 엄마가 그에게 가장 자주 얘기한 건, 혹시 자신이 어떻게 되면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잘 도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엄마는 늘 나의 상태를 비밀로 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나와 자신의 인생을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엄마는 내가 모르는 엄마였다. 엄마에게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마지막엔, 마지막에는 뭐라고 했냐.
-마지막엔 날 안아 주셨어. 꽉.
곤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간신히 속삭이듯 내뱉었다.
-따뜻했냐, 그 품이.
-응. 많이

솟아올라 굳어 있던 곤이의 어깨가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듯 그 애의 얼굴이 쭈글쭈글해졌다. 그 얼굴은 천천히 아래로 향했고 이어서 무릎이 툭 꺾였다. 고개를 푹 숙인 몸이 들썩였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그 애는 울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곤이를 내려다보았다. 쓸데없이 키가 커진 느낌이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곤이의 그런 행동들을 볼 대마다 도라의 머리카락이 내게 닿았을 때처럼 문득 가슴에 돌덩이가 앉곤 했다. 그때보다 더 무겁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돌덩이가.

곤이한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네 엄마 앞에서 아들인 척해서. 내게 다른 친구가 생긴 걸 말하지 않아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는 안 그랬을 거라고,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피부는 새하얗고 입술은 장밋빛이었다. 옅은 갈색에 가까운 머리칼과 직선으로 뻗은 정교한 눈썹. 깊고 투명한 눈. 신은 이상한 곳에 천사의 얼굴을 주셨다.

내게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처음엔 할멈을 찌른 남자의 마음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점차 다른 쪽으로 옮겨 갔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하는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그냥. 만나러 간다. 모두가 괴물이라 말하던 내 착한 친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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