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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책

문래동의 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고양이였다고 할 수는 없다》

by Sibnt 2019.03.08

'청색종이'라는 문래동 독립책방이 있다. 검색해보니, 독립출판도 하고 책방 운영도 하는 곳인 것 같다. 시인이 운영하는 책방. 그래서인지 검색하는 내용마다 시집 전문 책방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고양이였다고 할 수는 없다》는 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공간에 대한 생각, 느낌, 감정, 역사를 글로 남기는 것. 이것은 '청색종이'를 거쳐 간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청색종이'를 만들어간 저자의 가족들에게는 정말 큰 의미였을 것 같다. 공간에 대한 이야기와 중간마다 들어가 있는 사진은, 읽는 나에게도 '청색종이'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할 만큼 좋았다.

책은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 오탈자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 오려 붙인 것과 펜으로 수정한 것들도 많았고, 그 외에도 3~4개를 발견했으니 합쳐서 16개 정도 되었다. 오탈자에 마음이 빼앗겨 내용에 집중하지 못할 때도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책을 보며 공간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방문하는 사람이 편안하게, 행복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집이라는 공간이나, 혹 나중에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그런 공간이 되길…. 내 공간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애정하는 공간이 그런 공간이 되도록 마음을 보태고 싶다.

 

* 책 속 밑줄

일찍 책방 문을 닫을 때가 있다. 비가 오면 손님도 없다. 빗소리가 대신 책방을 찾아주는 날이다. 그리고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다. -p.32

행복이란 어느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다. 골목에 앉아 악기 소리에 함께 귀 기울여주는 것,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 일, 함께 새벽을 맞는 일. -p.98

청색종이 책방은 한때 장미넝쿨의 집이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나이가 구순이 넘은 할머니가 살았다. 할머니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 장미넝쿨 할머니는 생전에 붉은 플라스틱 의자를 내놓고 대문 앞에 앉아 있곤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햇볕도 쬐곤 했다. -p.154

책방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이제 치즈를 찾는다. 치즈가 책방 주인을 간택했으니 책방 주인은 길고양이 밥을 책임져야 한다. 치즈가 무사히 어른 고양이가 될 때까지. 저 먼 세상으로 나갈 때까지. -p.168

책방에는 다락방이 있다. 비가 내리면 다락방에 누워 있곤 한다. 마음이 어느새 부풀어 오른다. 책들을 펼친다. 글자들은 빗방울이 되어 세상 어딘가에 흘러내릴 것 같다. -p.173

바느질이 어려워 할머니한테 해달라고 해야지 하고 숙제를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 할머니가 염낭 주머니를 다 만들어 놓았지만 교과서에 나온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 나는 숨도 쉬지 않고 할머니에게 막 대들었다. 할머니는 어떻게 하는지 알려 달라고 했지만 나는 막무가내로 할머니에게 대들고 막 울어댔다. 할머니 때문에 인생이 망했다면서 얼마나 떼쓰고 울었는지 할머니는 바느질한 염낭을 한 땀 한 땀 뜯어내었다. …. 손녀를 달래고 달래던 할머니는 어느새 내 옆에서 같이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p.187

농담이지만 즐거운 상상을 하며 모두 한바탕 웃었다. 어쨌든 옥상에서 우리는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길 바랐다. 문래동은 그런 곳이다. 무엇을 해도 용서되는 곳, 무언가 어떤 것이든 시도해보고 싶은 곳. -p.194

헤밍웨이가 알려준 방법이 있다. 하루가 끝나는 밤에는 아무리 좋은 문장이 떠올라도 다음 날 아침으로 미뤄라. 첫 문장은 늘 바람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일은 온전히 내가 되는 일이다. -p.196

문래동은 그나마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는 동네다. 때로는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늘 그런 법이다. 오히려 아무 일이 없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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