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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책

책과 기억이 만나다,《상호대차》

by Sibnt 2019. 2. 26.

독립책방에서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는 사실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SNS에서 강민선 작가의 글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본 적이 있어 눈에 익었고, 책 표지에 삽입된 사진과 표지 색상, 책 두께, 크기 등이 마음에 들어 이 책을 선택했다.

《상호대차》제목 아래에는 '내 인생을 관통한 책'이라 적혀있다. 이 책은 작가가 과거에 읽었던 책들 중 10권을 골라 다시 읽고 쓴 독서일기이다. 작가는 이 책들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읽은 책과 작가의 기억이 어우러진 이야기들 속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어릴 적 작가는 사귀고 싶은 친구와 친해질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지만, 먼저 다가갈 용기는 부족했던 아이였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함께 앉을 친구를 정하지 못한 채 버스에 탔고, 짝을 정하지 못한 다른 어떤 아이와 함께 앉게 되었다. 그 아이는 반 아이들이 싫어하는 아이였다. 작가는 도착할 무렵 멀미가 찾아와 음식물을 다 토했다. 도착 후 다른 아이들은 내리면서 작가를 외면하였고, 반 아이들이 싫어하는 그 아이만이 남아서 뒷정리를 도왔다. "누군가 끔찍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를 도와주는 이가 딱 한 사람만 있어도 그는 끔찍함을 모면할 수 있다. 끔찍함이란 때론 외로움에서 오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부분을 읽으며 나는 울컥했다. 정말이다. 한 사람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따뜻해지는지.

책을 다시 보며, 예전에 그 책을 읽었던 때의 기억을 만나는 경험은 참 신비롭다. 내가 지금 읽는 책들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훗날 지금 읽던 책들을 다시 읽게 된다면, 나는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될까.

 

* 책 속 밑줄

책은 한곳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찾는 사람에 따라 자리와 주인을 바꿔가며 이동한다. -p.10

이미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을 나는 왜 그리도 갖고 싶었을까. 두고두고 곁에 두고 싶었을까. 그런다고 해서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닐 텐데. 세상에 어떤 책도 그런 식으로 내 것이 될 수는 없는데. 그때는 그랬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어서 언제든지 손을 뻗으면 그 안으로 초대해줄 것 같은 책의 물성이 내겐 중요했다. -p.34

블로그에 비공개로 혼자 글을 쓰던 나날들이 인생의 암흑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황금기였다. -p.45

죽는 것은 조금도 겁나지 않는다는 말. 그보다 고약한 건 그냥 사는 것, 진정으로 살지 않는 것. -p.46

글로써 사람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일상도, 쓰고자 하는 마음도 모두 다 문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p.84

어떤 책을 다시 읽으면 그 책과 함께 보낸 나의 시간도 다시 사는 것 같다. -p.95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그동안 몰랐다고.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 동안 말과 글로, 마음으로 선을 긋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고. -p.99

인생의 단 한두 장면만 보고 어떻게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냐마는 한두 장면만으로도 진실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p.102

중학교 담임 선생님은 소년에게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며 걱정을 한다. 운동은 하느냐는 질문에 소년은 신문 배달을 한다고 말한다. 하루 두세 시간씩 뛰어다니니 다리와 심장만큼은 튼튼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소년에게 선생님이 답한다. "운동하고 노동하고는 다른 거야." -p.128-129

그날 그가 잃은 것은 부모나 친구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였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증명해줄 유일한 인물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에겐 이 세상 통틀어 할머니뿐이었다. -p.133

누군가 끔찍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를 도와주는 이가 딱 한 사람만 있어도 그는 끔찍함을 모면할 수 있다. 끔찍함이란 때론 외로움에서 오기 때문이다. -p.164

 

* 책 속 책

《7번 국도》 - 김연수

《낯선 연인》- 크리스토프 하인

《독학자》- 배수아

《내 친구》- 에마뉘엘 보브

《사소설》- 임소라

《파씨의 입문》- 황정은

《여름 거짓말》- 베른하르트 슐링크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백민석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겨울 아이》- 엠마뉘엘 카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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