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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책

시가 스민 문장들, 《시, 나의 가장 가난한 사치》

by Sibnt 2019.02.24

시가 내 삶에 스며든다면, 나는 이와 같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를 사랑해서일까. 그녀의 표현 또한 시처럼 아름다웠다.

나에게 시는 어려운 세계였다. 학생 때 배경을 설명해가며 시를 뜯어주면, 나는 말라버린 시를 억지로 삼켰다. 시간이 흘러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시를 살짝 맛보게 되었는데, 시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나. 하며 놀랐다.

시를 점점 좋아하고는 있지만, 아직 시를 잘 읽어내진 못한다. 가끔 나에게 머무는 시가 있으면 나도 잠시 멈춰 설 뿐. 시를 더 잘 읽어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시가 내 삶에 스며들었으면 한다. 그렇게 내 마음도, 언어도 시를 닮아갔으면 좋겠다.

 

* 책 속 밑줄

사랑이 시작될 때, '누가 더 많이 사랑하는가'는 '누가 더 많이 기다리는가'다. 사랑은 상대의 시간을 점유하는 일이고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는 일이다. 사랑에 빠지면 온통 그 사람 생각만 하며 하루를 지낸다. 나의 시간은 그 사람의 시간보다 항상 앞서 가게 되고, 나는 항상 그 사람이 오기 전에 먼저 그 자리에 가 있게 된다. 사랑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p.25

언어는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올 때 가장 진실하고, 가장 절실할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게 내 생각이다. -p.65

아! 돌아보니 기형도 시인의 말대로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다. 그렇게 질투는 벌거벗은 감정이다. 우리 모두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 때문에 괴로워한다. 저마다 그 질투의 괴로움을 어떻게 처리하는가가 삶에서 커다란 문제다. -p.90

우리 모두 질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질투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행복을 증진시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결핍과 맞서야 한다. 자신이 가진 능력 가운데 현실적으로 정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은 무엇인지 생각해내야 한다. 진정으로 '질투는 나의 힘'이기 위해서. -p.92

인터뷰를 옆에서 엿들으니 매번 '사랑하는 내 아내가'로 시작하셔서 '내 아내를 사랑한다'로 끝나곤 했지. -p.102, 서정주 시인 부부

나는 새도 그러하고 박힌 나무도 그러하니, 우리 모두 묵묵히 서 있는 자들을 연민하자.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라고 잠자리에 눕는 시한부의 우리들을 애틋해하자. 움켜잡았던 흙을 놓고 허공에 떴던 삶을 다 데리고,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곳, 닿고 싶은 그 곳으로 가는 동지들이 아닌가. -p.114

할머니가 포대기에 아기를 업으면 두 사람은 한 몸처럼 보였다. 할머니의 등에 붙은 아기는 어린 할머니처럼 의젓해 보였고, 아기를 등에 업은 할머니는 나이든 아기처럼 천진해 보였다. 그 사이가 한 뼘도 안 되었다. 할머니는 점점 종달새, 풀잎, 배꽃처럼 웃었고, 아기의 분홍 잇몸에선 새싹처럼 이가 나기 시작했다. 삶에서 유아성과 성인성은 저렇게 등과 가슴처럼 맞닿아 있다. -p.148

아! 나 없는 동안 빈방을 울리고, 공간을 채웠을 그 애절한 호출은 누구였을까? 그 사람은 왜 좀 더 기다리지 못했을까? 그 사람은 저 너머에서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리도 전화벨 소리에 애를 태운 건 아마도 그 시절 내가 몹시 외로웠기 때문이리라. -p.224

내가 마음이 약해지면 존재감이 약해진다는 것을. 존재감은 본인의 마음의 결정을 상대가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내가 단단할 땐 사람들도 무서워하지만, 내가 무기력할 땐 사람들도 무시합니다. -p.244

그렇게 실은 사랑한다고 소리쳐야 사랑하는 것이고, 소리 내어 울어야 슬픔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p.244 

 

 

* 좋았던 시 제목

천천히 와 / 정윤천

벽 / 정호승

넥타이 / 나해철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속리산에서 / 나희덕

내 늙은 아내 / 서정주

슬픔이 없는 십오 초 / 심보선

별 / 이상국

빈 집 / 기형도

전화 / 마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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