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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기록

나는 네가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어.

by Sibnt 2019.02.18
할머니 생신으로 온 가족이 모일 거라는 이야기, 요즘 들어 어머니가 자주 아프시다는 이야기, 일하는 것은 어떤지 이직 준비는 해야 하지 않은지 내 미래에 대한 이야기 등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가는 길에 아버지는 이야기들을 꺼내셨다.

직장, 연애, 결혼 등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마다 절대 빠지지 않는 불편한 주제의 이야기. 나는 언제부턴가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가 답답해졌다. 그런 자리에서 굳어진 내 표정을 보셔서인지 부모님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자주 꺼내시는 편은 아니다. 꺼내신다고 하더라도 잘 모르겠다는 답 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겠지만.

그런 아버지께서 타지에 혼자 사는 아들이 걱정되었나 보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셨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지금 하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하면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그런 걱정들. 내가 좀 더 안정적으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이셨다.

"나는 네가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어."

앞의 이야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범주였는데,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무슨 일을 하든, 내가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에 나는 눈물이 날뻔했다. 사는 게 참 재미없다고 생각이 들어 무기력에 빠져있는 요즘인데, 내가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라니.

뭐랄까. 내 삶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내편이 생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무얼 도전해도 괜찮겠다 싶은 안정감이 들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부모님이셨겠지만, 다른 느낌이다. 그동안 친척들에게 들었던 불편한 이야기들도 함께 씻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네가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어."

댓글2

  • suni 2019.02.20 12:11

    이 글 읽고 나서 계속 생각하게 됐어요. 재미있게 사는 것에 대해서..스스로에게는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럼에도 과연 지금 나는 내 아이들에게 이 말을 해 줄 수 있는가 하는 생각, 정해진 틀에 맞춰 사는 삶이 정답이 아니라고, 네 삶을 존중하고 응원한다고 편들어 주는 부모가 되어야 하는데 결국 아직까지 말 못했어요. 다른 이들에게는 할 수 있는 말이 내 자녀에게는 하기 어렵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하지요..아버님께서 sibnt님을 정말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살짝 부럽기도..ㅎ
    답글

    • BlogIcon Sibnt 2019.02.21 22:51 신고

      저는 아이들은 없어서, 잘 공감은 안되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현실을 보면 쉽게 나오는 이야기는 아닐듯 해요. 사실, 저희 세대는 아이에게 이런 현실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아이를 갖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인터뷰집 내용 참고) 쉽지 않은 이야기였을것 같아요. 아버지도. 그래서 감사해요. 그렇게 얘기해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