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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책

열심히 말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by Sibnt 2018. 12. 24.

책 제목과 책 표지에 끌려서 읽어본 책이다. 열심히 살라고 강조하는 세상에서 열심히 살 뻔했다니. 재미있는 제목이다. 요즘에는 이런 느낌의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은 내 인생이 먼저예요.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퇴사중독 등등... 그만큼 요즘 사람들이 괜찮다 따스하게 품어주는 위로가 필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책은 아니지만 공감되는 생각들이 있어서 편안하게 읽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행복은 돈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돈은 능력과 연결되어 있고, 열심과 연결되어있다. 그러니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학습되었다. 가끔 두렵다. 열심히만 살다가 그렇게 죽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혹,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무언가를 누리기를 원한다면, 도덕적 문제 있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열심을 다하지 않는 사람의 변명일지 모르겠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마음이 그러했으면 좋겠고, 환경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다.


* 책 속 밑줄


욕심을 버리라는 이야기는 꿈을 꾸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꿈을 꾸고 이루려고 하되 큰 기대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스스로를 가장 빨리 불행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고 있다면 '비교'를 추천한다. 그건 실패가 없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에게 잘 보이려 하지 말고, 우리 모두 수염을 기르자. 무난한 사람보다는 개성 있는 사람이 되자. 안티를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가 개성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유치한(?) 마음 때문이라는 걸 되새긴다면 선택은 한결 가벼워진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하면 뭔가 덜 좋은 걸 얻은 것 같지만 '꿩 대신 치킨'이라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치킨은 사랑이니까.


누군가는 루저들이나 하는 '자기 위로', '자기합리화'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고 다그치겠지. 그렇게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자기 위로'나 '자기합리화'가 나쁜 것일까? 자기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려 스스로 위로하고 합리화하는 게 잘못된 것일까? 나는 내 삶을 더 사랑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몇천 번이라도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 생각이다.


내 바람과는 다르게 집값이 계속 오르는 이유도 대출로 집을 산 모든 이의 간절한 소망이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닐까? 집값이 내려가면 그들 대부분은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파산하지 않으려면 집값은 계속 올라야만 한다.


사고 싶은 게 많다는 건 그냥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영혼의 어딘가가 병들어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나는 다 나은 걸까?


시도가 낳은 모든 것들은 당신을 시험한다. 당신이 그것을 얼마나 원하는지를. 거부를 당한다 해도 그 일을 할 것인가를. _영화<삶의 가장자리>중에서


수입 공백기는 공포니까.


급기야 '나 하나쯤 없어져도 세상은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겠지?'라는 위험한 생각도 했다.


"너 이따위로 그리면 대학 못 가." "네가 잠자는 시간에도 누군가는 그림을 그려." "이 정도면 저기 아래 지방대쯤은 갈 수 있겠네. 부모님이 참 좋아하시겠다." 그런 말들을 서슴없이 던져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일을 하는데, 정작 학교 생활을 잘 못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몇 년간 이어지다 보니 나는 강사 일이 정말 싫어졌다.


속옷은 언제나 겉옷에 밀려 뒷전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겉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아버지가 느꼈을 무력감에 대해 생각한다. 아버지도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가난을 물려받았고 어떡해서든 잘 살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그 시간은 치유의 시간이다. 인간관계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는 시간. 그렇기에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얼마든지 혼자 하는 걸 즐겨도 되지 않나 싶다. 단, 그러고 나서는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피곤하고 짜증 나는 사람들 속으로 그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노력으로 자신의 타고난 환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신화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그래, 내 환경이 아니라 내 노력이 부족했던 거야.'라며 모든 부족함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착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흙수저였다.


나는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싫어한다. 목숨 빼곤 다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쉽게 포기하며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원하는 목표가 있으면 노력도 하고, 최선을 다해봐야 한다. 그렇게 두세 번 도전했는데도 안 되면 과감히 포기하는 게 맞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부자 되세요"는 강요처럼 들린다. "꼭 부자 되세요. 부자가 안 되면 비참해져요. 부자가 제일 좋은 거예요. 다른 것은 별로 가치가 없어요."라고.


내가 이 나이에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내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나이에 결혼도 안 하고, 월세에 살고, 자동차가 없지만 불편하거나 비참하지 않다. 문제는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본다는 것이다. 정작 나는 괜찮은데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한심하게 보니 나 좀 비참해지려고 한다. 아니, 확실히 비참하다. 원래는 비참하지 않았는데 남들이 그렇다니 좀 그렇다. 이건 내 삶인데, 내 기분인데 왜 타인의 평가에 따라 괜찮았다가 불행했다가 하는 걸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원래 인생은 공평하지 않아. 노력으로 다 된다는 말도 거짓말이지. 알겠어? 네 노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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